항목 ID | GC00201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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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繼美 |
영어음역 | Han Gyem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석린 |
[정의]
조선 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공보(公甫)이다.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의 손자로, 함길도관찰출척사 한혜(韓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성달생(成達生)의 딸이다. 그의 처는 세조(世祖)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언니로, 윤번(尹磻)의 딸이다.
[활동사항]
1438년(세종 20) 18세의 나이에 음보로 충의위사용이 되고, 부사직으로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나주판관을 거쳐 1452년(문종 2) 형조도관좌랑에 제수되었다. 다음해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사은사로 명나라에 갈 때 그를 따라갔다가 돌아온 뒤 군자판관이 되었으며, 1455년(단종 3) 사복시소윤에 제수되었다. 이해 세조가 즉위하자 추충좌익공신 3등에 책록되고 통훈대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절충장군행호분시위사대호군지사간원사로 옮겨지고, 이해 6월 동부승지로 승진하였으며, 7월에 우부승지로, 10월에 좌부승지로 나갔다. 1457년 우승지로 있을 때 세자의 질병을 간호하여 왕의 칭찬을 받았다. 1458년 9월 가선대부로서 호조참판이 되고, 서원군(西原君)에 봉하여 졌다.
1461년 하삼도의 부자(富者)를 찾아내어 평안도·황해도·강원도 등에 이주시킬 때, 안집도순찰사가 되어 제방을 쌓고 군진(軍陣)의 황무지를 개간하는 등 북방개척에 큰 공적을 세웠다. 1463년 자헌대부로서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때 3도의 군적(軍籍)을 정비하도록 하였는데, 호구(戶口)의 증감을 정확하게 조사하여 왕의 뜻에 부합하였다.
1465년 정헌대부로서 겸사복장이 되었다가 오위도총부도총관으로 옮겼다. 1467년 숭정대부로서 평안도병마수군절도사 겸 영변대도호부사로 부임하였다. 이해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평안도의 정병을 이끌고 가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되고, 숭록대부 우찬성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이 되었다.
1469년(예종 1) 좌찬성으로 옮기고 이조판서를 겸하였다. 1470년 보국숭록대부에 승품되고 서원부원군에 봉하여졌다. 1471년 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 2등에 책록되고, 이어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양(文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