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1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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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月- |
영어음역 | Haewoli mudeom |
영어의미역 | Haewol's Grav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예경희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해월의 묘.
[위치와 교통]
우암산 우회도로의 대한불교수도원의 기점에서 우회도로를 따라 약 800m 지점이며, 우암산우회도로가 있어 접근하기에 편리하다.
[현황]
태극문을 새긴 대리석에 ‘烈女海月之墓(열녀해월지묘)’라는 묘비와 더불어 있다
[해월의 약력]
조선 영조(英祖) 즉위 후 소론이 배격되자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는 정희량(鄭希亮), 이유익(李有翼), 박필현(朴弼顯) 등과 공모하여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추대하고 청주성을 점령하였다.
반란군이 청주병영을 함락하자 이 때 그녀는 홍림이 좌영 부근에서 칼을 빼어 들고 이에 대항하자 눈물을 흘리면서 “어찌 70이 되신 어머니를 생각지도 않고 죽을 곳으로 가려 하십니까?”하자 홍림은 “당장 위기에 처해 있는 데 불효가 된다하여 어찌 의를 버리고 살겠는가?”하면서 이를 뿌리치고 나아가 싸우다가 절도사와 더불어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이에 해월은 반란군에게 애걸하여 홍림의 시체를 찾아서 묻어 주었다.
그 뒤 유복자 홍유복(洪遺腹)을 낳아 7년 동안 키웠으나 요절하고 말았다. 해월은 “내가 남편이 죽던 날 같이 죽지 못한 것은 그의 유복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며 남편을 따라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