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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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皐遺稿- |
영어음역 | Donggo Yugo |
영어의미역 | Posthumous Works of Dongg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성수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이준경(李浚慶)[1499~1572]의 시문집.
[개설]
명종(明宗)[1546~1566] 당시 영의정이었던 이준경(李浚慶)[1499~1572]이 당시의 정치현실을 비판하면서 경국제세(經國濟世)의 논리를 전개하고, 특히 붕당(朋黨)의 조짐을 왕에게 경고하고, 국방에 관한 시정책을 주장하는 등의 시문집들을 모은 책으로, 1588년부터 1913년에 이르기까지 3차에 걸쳐 간행되었다.
[서지적 상황]
목활자본이며, 14권 7책으로 되어 있다. 제2차 간행본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고, 3회에 걸쳐 간행되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간행경위]
이 책의 초간본(初刊本)은 1588년(선조 21)에 저자의 막내아들인 이덕열(李德悅)에 의하여 청주(淸州)에서 목활자본으로 간행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었다. 1706년(숙종 32)에 후손들에 의하여 함흥에서 8권 4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제2차 간행 판본에도 누락된 글이 많아서 1913년에 후손들에 의하여 남원에서 중간(重刊)되었다.
[내용]
이 유고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봉사(封事)·소(疏)·계사(啓辭)·차자(箚子) 등에서는 당시의 정치현실을 날카롭게 분석·비판하면서 ‘백성을 구제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자’는 논리가 일관되고 있어서, 이준경의 경국제세의 논리를 파악할 수 있음이 그 특징이다. 특히 이준경이 죽기 직전인 1572년에 쓴 소차(疏箚: 상소문의 일종)에서는 “요즘 사람들은 행검(行檢)을 일삼지 않고 책읽기에도 힘쓰지 않으며, 고담대언(高談大言)만을 늘어놓고 붕비(朋比)를 결성한다”라고 하여, 나라의 선비들이 붕당을 맺는 조짐을 예견하고 그 폐해를 제거하도록 임금에게 간절히 호소, 건의하였다.
[의의와 평가]
과연 이 글이 상소된 지 3년도 채 아니 되어 동·서의 분당이 일어나 당쟁의 시대로 돌입하였음을 보아도 이준경의 견해는 탁월하였다. 그는 또한 「녹사서리사태의(綠事書吏沙汰議)」에서 사족(士族: 선비)과 비(非)사족을 명백히 구분하고, 이 중 녹사(녹봉(祿俸)을 받고 벼슬을 하는 중인(中人)들)·서리(書吏: 관아(官衙)의 아전(衙前) 등)의 명부를 작성하고 이들을 모두 군적(軍籍)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수군의(水軍議)」에서는 변경의 장수들이 재물 모으기만 힘쓰고, 흉년에 군사들이 도망가므로 당시 군사제도의 흐트러짐을 경계하면서, 국방에 대한 시정책을 건의하였다. 따라서 이들 자료는 당시의 국방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