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3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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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宋氏 |
영어음역 | Cheongju Songssi |
영어의미역 | Cheongju S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오갑균 |
[정의]
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연원]
시조는 송유충(宋有忠)으로 충숙왕 때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졌으며 아들 송훤(宋暄)은 조선조 개국공신으로 서원군(西原君)을 습봉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청주로 하였다. 그 후 누대가 실전되어 송승은(宋承殷)을 1세조(世祖)로 하고 있다.
[세거지]
청주에 본관을 두고 있으나 청주 근교에 세거한 흔적을 찾지 못했으나 송승은이 조선 단종 때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고 계유정란때 낙향하여 김해 하계면에 은둔하면서 이곳이 세거지가 되었다.
2세 송숙형(宋淑亨)은 훈련원 참군을 역임하였고, 5세로 절제사를 지낸 송창(宋昌)은 아들 송밀(宋密)과 송빈(宋賓)을 두었고, 송밀의 두 아들 송민영(宋敏英)은 만호공파(萬戶公派)로, 송정영(宋廷英)은 부사공파(府事公派)로 분파되었으며, 송빈[1542~1592]의 두 아들 송정백(宋廷伯)은 청암공파로, 송정남(宋廷男)은 부사공파로 각각 분파되었다.
[인물]
송밀의 자는 사성(士成)이며, 예빈시주부를 지냈다.
송빈은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순절하였으며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송정백의 자는 공보(公輔), 호는 청암(晴庵)이며, 진사(進士)이다.
송민영의 자는 수이(秀而),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송제용(宋齊龍)의 자는 치운(致雲), 절충장군·부사과를 지냈다.
송재식(宋在軾)의 자는 서운(瑞云), 통정대부에 올랐다.
송처관(宋處寬)[1410~1477]은 세종 14년 문과에 급제, 1449년 지청풍군사를 거쳐 집현전 부제학·이조참의·전라도관찰사·지주추원사를 역임했다.
송처검(宋處儉)은 송처관의 동생으로 세종 16년 문과에 급제, 대사성을 지냈다.
청주송씨는 1985년 전국인구조사에 의하면 1,746가구에 7,290명이 살고 있었으며, 200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2,183가구에 6,942명이다.
[묘역]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송빈을 추모하는 단소인 충단(忠壇)은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 있고, 동일한 취지의 추원재(追遠齋)는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도강동에 있다. 증이조참판청주송공순절기념비가 경상남도 김해시 서상동에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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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4 | 연원 수정 | [연원] 시조는 송춘으로 고려말에 예부상서를 지냈고, 그이 아들 송유충은 충숙왕 때 청원군으로 봉해졌으며... -> 청주송씨세보에 의하면 시조는 송유충으로 충숙왕때 청원군에 봉해졌으며... 로 수정하였음 |
2016.08.24 | 연원 재수정 | [연원] 원고 원상 복구 |
2012.01.16 | 글자 오자 수정 | 집현전으로 수정함. |
2011.03.29 | 본문 내용 수정 | [묘역] 충단(忠壇) 송빈은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 추원재(追遠齋) 송빈은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도강동에 있다.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송빈을 추모하는 단소인 충단(忠壇)은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 있고 , 동일한 취지의 추원재(追遠齋)는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도강동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