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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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Seongangil, Central Road of Cheongju |
이칭/별칭 | 본정(本町),본정통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석린 |
[정의]
예전의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北門) 자리에서 남문(南門) 자리에 이르는 큰길로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개관]
성안길은 일본식 명칭 본정(本町)[본정통]을 대신하여 최근에 새로 만든 지명이다. 예전으로 치면 청주읍성의 안에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읍성은 예로부터 청주의 사회, 경제, 군사,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지역으로, 임진왜란시 최초의 승전고를 올린 곳으로 유명하다. 그 때문에 일제 침략기인 1920년대 도시계획이란 미명아래 완전히 파괴되어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되었으며, 청주읍성을 중심으로 한 주요 문화유적이 이전 또는 파손되었다. 그러나 성안길 주변에는 중앙공원 내 유적과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을 비롯하여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청주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며 청주 상권의 중심지이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을 꼽으라면 명동과 강남역 등을 꼽듯이, 청주에서는 성안길을 꼽을 수 있는 것이다. 쥬네쯔와 청주백화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성안길은 청주상권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명칭유래]
성안길은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의해 본정통이라는 이름으로 얼마 전까지 불리다가 시민들의 ‘바른 지명찾기 운동’에 의해 성안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성안길이란 청주읍성의 안에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 ‘성안’이라는 지명이 대단히 많다. 성(城)의 안에 있는 마을이나 골짜기 등을 지시한다. 대부분 ‘성내(城內)’라는 한자 지명과 함께 쓰인다. 그리고 ‘성안’은 ‘성안고개’, ‘성안골’, ‘성안논’, ‘성안들’, ‘성안말’, ‘성안보’, ‘성안산’ 등에서 보듯 지명의 선행 요소로도 자주 쓰인다. 따라서 ‘성안길’이라는 지명도 조어가 가능하다.
‘성안’은 ‘자안’으로도 표현된다. ‘자안’은 ‘잣안’의 변형이다. ‘잣’이 ‘성(城)’이라는 뜻이니 ‘잣안’ 즉 ‘자안’은 ‘성안’과 의미가 같다. ‘자안’은 독자적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자안골’, ‘자안마루’, ‘자안봉’, ‘자안산’ 등에서 보듯 지명의 선행 요소로도 쓰인다.
[청주 상권의 변천]
청주읍성은 삼한시대에 마한 땅으로 “낭자곡”이란 지명으로 시작하여, 삼국시대는 백제 땅으로 “상당현”이라 칭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는 신라 땅으로 “서원경”으로 불리어오다가 고려시대에는 “청주목”으로 불리었다. 그 이후 이곳은 청주읍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남문터(현재 남문로1가(南門路一街))와 북문터(현재 북문로3가), 그리고 관아(현재 중앙공원(中央公園))를 중심으로 조선시대까지 청주의 지방행정과 문화의 중심을 이루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이른바 시구개정사업으로 헐리었다. 시구개정사업이후 청주상권의 중심은 본정통(지금의 성안길)이었다. 또한 이시기에 청주(淸州)란 지명을 처음 사용하였다.
조선시대는 직거래장터와 물물교환 및 보부상이 성행하던 시기로 청주상권의 형성기라 할 수 있다. 고종 33년에 지방제도를 개정 전국 8도로 개편함에 따라 공주가 충청도의 수부(首府)가 되자 청주목(淸州牧)은 청주군(淸州郡)으로 변경되었다. 그 이후 충청남북 2도로 분리됨에 따라 청주는 관찰부(觀察府)가 있는 충주의 소속군으로 편재되었으나, 1908년 관찰부를 청주에 이전함으로 인해 충청북도의 도청으로 격상하였으며 청주군 청주면(淸州面)이라 개칭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청주읍성을 중심으로 지금의 남주동 골목과 서문동 시장은 옛 장터 자리로서 나무전, 닭전거리, 떡전, 쇠전, 우시장, 싸전, 약전, 어물전, 채소전, 피전거리, 먹거리 등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왔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개통을 계기로 1920년 충북선(조치원~청주간)이 개통하게 되었으며, 이어서 1926년 청주~충주간의 철도가 연장 되었다. 이로 인해 청주역전(지금의 북문로3가)을 중심으로 노점상과 짐 운반업(지게, 리어카, 역마차) 등이 성행하였고, 연탄공장도 위치하면서 단순한 생필품 위주의 사업에서 생산시설과 물품운반 및 극장(자유극장, 동아극장, 중앙극장, 청주극장, 현대극장)과 같은 서비스업까지도 발전하면서 청주상권 발달의 계기가 되었다.
해방 후 청주상권은 생산자 직거래시장을 중심으로 한 상거래가 성행하던 시기로 1946년 6월 청주부(淸州府)로 칭하였다가 1949년 8월 15일 시행 공포된 지방자치법에 의하여 청주시(淸州市)로 승격되었다. 이 시기 직거래장터 및 물물교환의 유통구조에서 남주시장과 서문시장, 역전을 중심으로 한 중앙시장, 성안길(옛 본정통거리) 상권을 중심으로 행정, 경제, 금융, 교통, 시장, 문화 등이 집중돼 있는 단핵상권의 형태로 상가 발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들어 도로가 발달하고 수요와 공급시장이 확대되면서 직거래 유통구조에서 중간상과 구멍가게 등이 성행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상권의 도약기를 맞이한 청주상권은 무심천지구의 정비사업과 더불어 상당로, 사직로 등의 도로와 교통편을 확장하게 된다. 이로 인해 버스터미널과 정류장, 성안길 중심의 도·소매업 상가발달이 이루어 졌고 더불어 재래시장도 지속적으로 도약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와 함께 1970년 청주공단이 조성됨으로써 산업기반조성과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1980년대는 경제성장기로 수요와 공급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슈퍼와 백화점 출현 등 유통산업이 더욱 성장하는 시기가 된다. 특히 산업화에 따른 도시인구 집중화 현상으로 주택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택지개발사업과 더불어 건설업이 성장하는 시기였다.
청주상권은 이 시기에 “청주공단의 영향권 내 봉명로와 공단오거리, 학교/학원가, 집합상가” 등으로 소매점과 음식점 및 주점업 등의 상가 발달이 확대되었고, 특히 성안길 중심의 행정, 금융, 로드 숍 전문상가 등이 발달하여 명실상부한 청주의 지역 중심 상업지구 상권으로 발전하였다.
1990년대 들어 소비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공급 과잉기를 맞이하면서 공급업자들은 앞 다투어 재고비 부담을 줄이고 저비용 고효율 전략을 구사하였으며, 경쟁우위를 차지하고자 고객지향주의 경영전략을 폈다. 이로 인해 청주상권은 대형할인점 주도 상권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택지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면서 주택 및 아파트단지 조성으로 지역일반 상업지구 상권과 근린주거 상권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청주상권은 단핵상권에서 다핵상권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며 청주상권은 제2성장기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1997년 이후 “대형할인점 입점과 국제통화기금(I.M.F)”을 계기로 도매·소매업은 쇠퇴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외식산업과 서비스산업은 체인화 사업으로 두각을 보였다.
특히 유통환경의 변화로 성안길 중심 상권에서 근린주거형(율량동·사천동지구, 산남동지구, 용암동지구, 분평동지구, 가경동·복대동지구, 개신동지구)으로 상권이 대폭 분산되어 성장하는 양상을 보였다.
2000년대는 저가 경영기로서 정보화산업이 급속히 확산되고 발전하는 글로벌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유통시장은 많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청주상권도 이 시기를 성숙기로 도약하였다. 특히 이시기에는 온라인 시장이라고 하는 “전자상거래와 홈쇼핑사업”이 두각을 나타냈으며 오프라인시장으로 “복합쇼핑물 전문상가, 체인사업” 등이 활발하게 발달하였다.
[현황]
현재 청주상권은 재래시장권, 로드 숍권, 지하상가권, 백화점권, 중·소형 마트권, 대형할인점권, 복합쇼핑상가권, 카테고리 전문상가권, 전자상거래권 등으로 블록화 현상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장기적이 경제 침체가 이어지면서 청주상권은 전체적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으며, 특히 중심지였던 성안길 주변의 상권은 점점 쇠퇴해 가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흥업백화점, 청주백화점, 엑서서리점, 레스토랑 등이 밀집되어 있으며, 영화관과 의류점이 분포되어 있다. 주로 20대 여성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2천6백여 개의 점포 중 40% 이상을 도매·소매업이 차지한다.
극장가를 중심으로 젊은층이 유동인구에서 높은 비중을 보인다. 특히, 의류점 및 액서서리점을 중심으로 20대 여성고객이 많이 관찰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망]
상권의 블록화와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성안길 주변의 상권이 침체기에 있기는 하지만, 성안길 상권은 20~50대 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의류점포가 고른 분포로 구성되어 있어 소비의 주축이었던 20대가 신용불량으로 인해 판매부진을 겼고 있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문화쇼핑의 거리로 발전시키려는 상인들의 노력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상권의 부흥을 예상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