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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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城洞山城-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
[옹기미 호랑이]
예전에 산성 마을 뒷산 골짜기인 막골, 곰골, 참나무골, 북장대(겅거울), 옹기미에 호랑이가 나와서 해질녘에는 산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어린애를 업고 가는 것을 콩밭을 매고 있던 아낙이 보고 소리 지르자 아이를 놓고 갔다. 호랑이가 동네 옆 냇가에 내려와 물을 마시다 사람이 지나가면 피해줬다. 옹기미에 굴이 있었는데 이 굴에서 호랑이가 산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겨울철에 눈이 쌓이면 눈 위에 큰 호랑이 발자국이 찍힌 걸 동네 사람 여럿이 보았다고 한다.
(제보자 : 이대원, 남, 1935년생,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59)
[상봉재]
산성에서 청주 가는 길인 상봉재에 예전에 서낭이 있었다. 서낭에는 늘 제사를 지낸 흔적인 떡이나 북어포가 남아 있었는데, 이 고개 길이 난 유래가 전해진다.
산성 마을에서 청주로 내려가려면 가팔라서 힘들었는데 어느 날 오뉴월에 서리가 내렸는데 그 모양이 산성에서 청주로 내려가는 길 모양으로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서리가 내린 자리로 청주 가는 길을 냈다고 한다.
(제보자 : 이대원, 남, 1935년생,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59)
[오누이내기]
성축을 처음 할 적에요, 삼 남매가 살았데요, 딸 형제는 나무틀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고 아들 하나는 성을 쌓게 되었데요. 성을 쌓기로 했는데요, 성을 다 쌓아서 나무 막음을 해야 하는데 나무 막음하기 이전에 딸이 들어오게 되었데요, 그래서 딸을 미쳐 못 들어오게 하느라고 팥죽을 쑤어서 그 딸을 줬다고 하는 이야기에요. 그래 아들이 성을 다 쌓고 딸이 성을 못 들어오는 바람에 생처를 입었다고 그 이야기를 하거든.
동문에 가면요, 들어오는 입구에 장수발자국이 있어요. 그래 이게 그때 쌓을 적에 장수 발자국이라고 전해 내려와요.
(제보자 : 이대원, 남, 1935년생,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59)
아들딸 남매를 뒀어. 딸은 성을 쌓고 아들은 나막개를 신고 서울을 갔다 오기로 했는데, 성을 다 쌓아가도 아들이 오지를 않는 거야. 누구 하나를 장수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 부모들은 아들을 (엄지를 내보이며) 이걸로 쳤잖아, 그지. 그러니까 딸을 죽여야 아들을 장수를 만들텐데, 그런데 성을 다 쌓아가도 아들이 오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생각 끝에 팥죽을 뜨겁게 끓여 가지고 새알슴이 경단 끓여 갖고 와서 얘 이거 먹고 하라고, 그 성 다 못다 쌓게 하느라고, 꼬셔가지고 그거 먹다가, 아들이 서울서 온거야, 나막개 신고. 서울서 돌아온 거야. 장군이 됐다고 그래. 무슨 장군이 됐다고 그래.
(제보자 : 이순자, 여, 1934년생,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05-12)
[기생바위]
그때는 기생들도 절개가 있었어. 지금이야 가정부인들도 엉망진창이지만, 옛날에는 기생도 누구 하나를 마음에 두면 평생을 그 사람을 위해서 기생노릇을 하고, 그래도 수절을 하고 살았다는 얘기야. 그래서 이제 딴 놈이 침범하려고 그러니까 거기서 떨어져 죽었다. 그래가지고 거기가 기생바위 전설이 있지.
돌이 거기 들어가면 그날 재수가 좋다고 해 가지고 던지고, 부인들이 던져서 들어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던지지.
(제보자 : 이대원, 남, 1935년생,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59,
이순자, 여, 1934년생,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05-12)
[도깨비]
각인사라는 간판이 있지. 전봇대 있는데, 우암동에 있는 스님이 저걸 얻어가지고 기도처를 하는 건데. 옛날에 그 집터가 도깨비터라 그랬어. 그래서 이제 꼭대기니까 옛날에는 저녁 잡수면 바깥양반들은 사랑에 들 한패씩 모여서 놀았잖아. 그러면 이제 집에 사람이 없잖아. 그런데 집에 문이 저절로 열리고, 거기 각인사 그러니까 터가 센거야. 그렇게 터가 센 데는 나도 그마만치 세야지 거기서 사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거기서 볶여서도 못 살아.
(제보자 : 이순자, 여, 1934년생,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