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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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亭洞- |
이칭/별칭 | 유정골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
[동제]
이정골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에 동제를 지낸다. 동제는 신격과 당의 위치에 따라 산신제와 장승제로 구분할 수 있다. 이정골에서는 천제당에서 먼저 지낸 다음 산제당, 그리고 장승의 순서로 지낸다.
제사 날짜는 보통 정월 열나흗날이나 보름날을 택하는데, 동네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당기거나 뒤로 미룬다.
제당은 천제당과 산제당 그리고 마을 앞 장승(석불입상) 등 총 세 곳이다. 천제당과 산제당은 마을 뒤에 있는 낙가산의 중턱에 있다. 천제당은 큰 바위인데, 길이가 4m 정도이고 높이가 2m 50㎝ 정도 된다. 그 바위 가운데 평평한 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한쪽에 60~70㎝ 정도의 선돌을 세웠다.
산제당은 천제당에서 약 50m 정도 내려온 곳에 위치한다. 움막과 같은 목조건물이었던 것을, 2004년 말에 가로 길이 약 5m, 세로 길이 약 2.5m, 높이 약 3m 정도의 컨테이너형 조립식 건물로 개수했다. 산제당은 두 칸으로 나뉘는데, 한 쪽은 산신을 모시는 곳으로 정면 벽에 산신 형상을 그린 그림이 있다. 나머지 한 쪽은 제기를 보관하는 곳이다. 예전에는 이 곳에서 밥을 지었다고 한다.
장승제의 제당은 따로 명칭이 없고, 그냥 장승이라고 한다.
정월 초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제일과 제관을 정한다. 제관은 3명(예전에는 3~7명)으로, 축관 한 명 공양주 2명이다. 제관을 선정할 때 부정을 막기 위해 생기복덕을 가리고, 동네에 환자나 출산과 관련된 사람은 없는지, 그리고 제관으로 뽑을 집안의 여자의 생리는 없는지 등을 살핀다. 선정된 제관들은 제가 끝날 때까지 금연·금주하고,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다.
제일이 되면 일어나서 가장 먼저 제관 집 대문에 금줄을 치고, 대문 앞 양쪽에 황토를 뿌린다. 금줄은 왼새끼를 꼬고, 황토는 세 무더기씩이다. 예전에는 금줄을 동네 어귀에 쳐서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마을 안에 들어온 사람은 나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제관 집에만 친다. 그리고 금줄에 예전에 흰 종이를 꽂았으나 지금은 꽂지 않는다.
아침식사를 하고 제관들은 목욕재계하고 제수를 마련한다. 예전에는 각자 집에서 목욕하였으나, 지금은 시내 목욕탕에서 한다. 제수는 보통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마련한다. 제수는 돼지머리와, 삼색실과, 포, 백설기, 보리차, 술(막걸리) 등이다. 보리차는 산신제에 올리고, 술은 장승제에 올린다. 돼지머리는 산신제에만 올린다. 예전에는 통돼지를 올리기도 했지만 현재는 돼지머리를 사와 공양주 집에서 삶아서 올린다. 떡은 한 시루나 두 시루를 찌는데, 예전에는 공양주 집에서 나누어 쪘으나 지금은 떡집에 맞춘다.
제관들이 목욕하고 제수를 마련하는 동안 공양주 집에서는 시간에 맞추어 떡을 찐다. 제관들이 돌아오는 대로 돼지머리를 삶아 바로 산으로 올라간다. 제당으로 출발하는 시간은 보통 오후 한 시 쯤이다.
산제당에 도착해서 주위를 청소하고, 산제당 옆의 골짜기에 샘을 파서 물을 모은다. 이 일이 끝나면 산제당에 제수를 차려 놓고 천제당으로 올라간다. 천제당에 도착하면 주위를 청소하고 제단에 제수를 차린다. 먼저 향을 피우고 촛불을 킨 다음 삼색실과와 포, 그리고 보리차를 올린다.
제 준비가 끝나는 대로 제를 올린다. 먼저 재배를 한 후, 단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축을 읽는다. 그 다음에 다시 재배하는 것으로 첫 번째 제사가 끝난다. 촛불과 향은 그대로 피워놓고, 제수를 조금씩 떼어놓은 다음 산제당으로 내려온다.
산제당에 내려오면 샘에서 물을 떠다가 손과 얼굴을 닦고 바로 산신제를 지낸다. 먼저 재배를 하고 축을 읽은 다음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마을 전체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소지와, 제관들의 가족과 개인의 복을 비는 소지이다. 소지를 올리고 다시 재배를 하고 음복하는 것으로 산신제는 끝난다. 제사가 끝나면 음복하고 음식을 조금씩 떼어 제당 주위에 뿌리고, 나머지는 가지고 내려온다.
마을에 내려오는 대로 제관들은 다시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만든다. 이는 장승에 치기 위한 것이다. 예전에는 미리 금줄을 쳐놓았지만 지금은 당일 치고 있다.
장승제에 올리는 제수는 삼색실과와 포, 막걸리이다. 예전에는 떡 한 시루를 올렸으나 지금은 올리지 않는다.
제수와 금줄을 가지고 장승 앞에 도착하면, 먼저 장승에 금줄을 두른다. 그런 다음 금줄에 포를 매단다. 제수를 차려 놓고 술을 부은 다음 재배한다. 예전에는 장승제에서도 축을 읽었지만 지금은 간략하게 하기 때문에 축을 읽지 않고 있다. 음복하는 것으로 장승제는 끝난다. 차려진 음식들은 제당에 그대로 두는데, 이 음식들을 먹으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
이렇게 제가 끝나면, 마을 주민들 모두가 회관에 모여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다.
동제의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일련의 과정과 규모는 예전에 비해 아주 눈에 띄게 간소화되었다.
예전의 경우를 보면, 먼저 제일과 제관을 선정할 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 선정 기준이 훨씬 까다로웠다. 그래서 젊은 여자가 있는 집은 될수록 제관으로 뽑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는 제를 지내기 전날이나 당일 아침에 미리 제당 주위와 샘을 청소하였지만, 지금은 제를 지내기 바로 전에 한다. 또한 금줄도 제사 당일이 아니라 며칠 전에, 제관 집 대문과 제당 주위, 그리고 마을 어귀까지 쳤다. 금줄을 치면 제사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의 마을 출입이 통제되었으며, 마을 사람 모두가 비린 음식을 먹지 않고, 살생을 금하였다.
제수의 경우도 예전에는 천제당과 산제당에 떡과 밥을 올렸다. 공양주 집에서 떡을 직접 해서 올리고, 밥은 산제당 옆의 샘에서 물을 받아 그곳에서 직접 지어 올렸다. 그렇지만 지금은 떡과 밥을 올리지 않는다. 제수에 있어서 이정골마을에서 특이한 것은 천제당과 산제당에 술을 올리지 않고 보리차를 올린다는 것이다. 술은 장승제에만 올렸다.
산신제를 지내는 절차도 훨씬 엄격하고 복잡했다. 먼저 천제당에 제수를 차려놓고, 내려와 산제당 제수를 차린다. 그리고 천제당에 올라가 제를 지내고 다시 내려와 산제당에서 제를 지낸다. 다시 올라가 천제당을 정리하고, 내려와 산제당을 정리했다. 그리고 산을 내려와 장승제를 지냈다.
[용왕제]
이정골의 용왕제는 마을의 공동체 신앙과 개인 신앙이 겹쳐진 형태였다. 이정골에는 웃말, 아랫말, 뒷말 등에 각각 우물이 있었다. 정월 보름날 마을 주민들이 모여 우물을 품고 주변을 청소한 다음 풍장을 쳤다. 상쇠가 우물 앞에서 “물 나오시오 물나오시오…….” 하면서 우물의 물이 마르지 않고, 동네가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저녁이 되면 각 집에서 부녀자들이 개인적으로 샘에 떡시루를 올리고 용왕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