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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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井上洞- |
이칭/별칭 | 석화,머굿대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 |
[돌꼬지 동제]
돌꼬지[石花] 마을에는 용출수인 우물이 마을 입구에 있다. 이 우물로 인해 정상동, 정하동, 정북동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할 정도로 인근에서는 유명한 우물이다. 실제로 농업용수가 개발되기 전까지 이 물은 농업용수로, 식수로도 쓰여 주민들의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우물이었다.
이런 고마운 우물에 동네 주민들은 샘제(용왕제)를 지낸다. 돌꼬지 동제는 세 군데서 지냈다. 우선 돌꼬지의 유래가 된 산모퉁이에 서 있는 아카시아 나무에 서낭제를 지낸 후, 마을 앞 들판에 서 있었던 고목에서 목신제를 지내고 마을로 다시 들어와 우물에 와서 용왕제를 지낸다.
샘제는 두 군데서 지냈는데 마을 위에 있는 윗샘과 마을 어귀 샘에서 지냈다. 우선 윗샘에서 지내고 나서 마을 어귀 샘에서 지냈는데 윗샘이 개인 소유지에 있어 현재 윗샘은 제를 올리지 않고 있다.
현재 목신제도 폐지될 예정이다. 왜냐하면 목신제를 올리던 보호수가 주민의 불찰로 고사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은 마을 앞 산모퉁이의 아카시아나무를 “당산나무”라고 부르고, 마을 앞 우물을 “샘”이라 부른다.
돌꼬지마을은 새해 설을 지내고 나서 음력 정월 열흘 쯤 제일을 택일한다. 대개 음력 정월 열 사흗날 무렵이 택일된다. 2005년은 음력 정월 열 사흗날 지냈다. 제관은 마을 연장자 중 정결한 분이 선출된다. 제관 한 명, 축관 한 명, 보조할 사람 한 명, 유사 한 두 명 정도로 다섯 명 정도가 선출된다. 예전에는 생기복덕을 맞추고 깨끗한 사람으로 엄격히 선출하였으나, 마을 주민이 이주하고 동제에 대한 신앙의식이 희미해지면서 다소 약화되어 제관 한 명, 축관 한 명을 선출해 두 명이 제를 올리고 그 밖의 주민은 제에 참관한다.
제수 마련은 집집마다 부녀회장이 쌀을 걷어 준비한다. 정해진 양은 없고 개인이 정성껏 낸다. 마을 주민이 모두 낸 쌀을 모아 떡과 밥을 준비하고 그 외 제수 마련 비용으로도 쓴다. 동네 가정 중 깨끗한 집에 백설기 한 시루씩 두 집, 밥 하는 집을 선정한다. 밥과 떡은 제를 올리기 전 바로 해서 따뜻한 떡과 밥을 제사에 올린다. 음식 준비를 하는 동네 부녀자들은 아침 일찍 시내에 나가 목욕을 하고나서 음식 준비를 한다. 서낭당 제물로는 돼지머리, 시루떡, 삼색실과와 술을 올려 제사상을 차린다. 아카시아 나무 앞에 시멘트로 기반을 만들어 놓아 이것을 제사상을 사용한다. 현재 산모퉁이에 서 있는 아카시아 나무는 원래 나무가 아니라 본 나무가 고사되면서 옆에서 새로 난 나무인데 2004년 태풍 때 오른쪽 가지가 잘려나간 상태이다.
돌꼬지마을 제사는 ‘당일정성’이라 해서 청소도 금줄도 당일 한다. 제사 시작은 제일 아침 샘 주변을 청소하고 물을 품는 것에서부터이다. 예전에는 ‘고리’라 불리던 물 푸는 그릇으로 하루 종일 물을 품었다. 물은 고리에 줄을 매달아 양쪽에서 둘이 잡아 다녀 품었다. 워낙 수량이 많아 우물의 반 정도 품으면 그때부터 물이 줄지 않아 정성을 다해 물을 품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물을 품으면 우물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 우물 청소를 한다. 이때 우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운수가 좋다고 한다. 특히 장가 못 간 노총각이 들어가면 그 해 장가를 가고, 아들 못 난 사람이 들어가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간혹 과부가 들어가 물을 품고 청소를 해 재가를 하기도 했다. 요즘은 양수기로 물을 품기 때문에 한, 두 시간 안에 청소와 물품기가 끝난다.
그 다음은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금줄은 서낭나무부터 친다. 가지마다 왼새끼를 칭칭 동여매 접근과 출입을 금하고 부정을 방지한다. 그 다음은 들판에 있던 둥구나무로 왼새끼를 길게 끌고 가 이어서 쳤다. 둥구나무가 길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길에서는 위로 높게 쳐 놓았다. 둥구나무에서 왼새끼를 마무리하고 그 다음은 마을로 들어와 우물에 금줄을 쳤다. 금줄을 칠 때 모든 제당에 황토를 뿌린다.
서낭제를 지낸 후 마을로 들어와 우물에 용왕제를 지낸다. 이 우물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물맛이 좋아 인근 사람들이 물을 받아가 식수로 사용할 정도였는데 현재는 물을 너무 많이 퍼 올려서 예전처럼 물이 많이 나지 않고 있다. 제수는 간략하게 메, 미역, 북어포를 놓고 술잔을 올리고 절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제사가 끝나면 마을회관에 모여 음복을 한다. 제관들뿐만 아니라 제에 참관한 젊은 사람들과 동네 아낙까지 마을회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다.
현재 마을 앞 들판에 있었던 나무는 청주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할 정도로 좋은 나무였는데 동네 주민이 농약을 잘못 살포하여 나무가 고사당하여 청주시청에서 나무를 베었다고 한다.
[윤분남 씨 댁 칠성단]
윤분남 씨 댁 뒤꼍 장독대 옆에 칠성단을 모시고 있다. 칠성단 신체는 터주가리모양이다. 충청도 터주가리와 다른 점은 짚으로 엮은 이엉 안에 벼 항아리가 아닌 막대기를 세워놓았다는 것이다. 윤분남 씨 댁 칠성은 시어머니가 모시던 것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윤분남 씨가 이어 모시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칠성단에 고사를 지내는 것은 한 해에 크게 세 번이다. 정월초사흗날, 사월 초파일, 칠월칠석이다. 우선 정월 초사흗날에는 칠성단 앞에 짚을 추려 십자로 깔고, 팥떡을 시루 채 놓는다. 떡시루 위에 쌀을 담은 주발에 초를 끼워 놓고, 물을 놓고 사방에 절을 한다. 이때 붉은 설기와 검은 팥을 동시에 사용하는데 검은 팥은 세 치, 다섯 치, 일곱 치를 놓는데, 이것은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사월 초파일에는 붉은 설기와 백설기 두 시루를 차려 놓고 고사를 지내고 칠월칠석에는 백설기를 놓고 고사를 지낸다. 칠석에 백설기만 올리는 것은 칠성이 흰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아들이 군대에 가는 등의 큰일을 앞두고 고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