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758
한자 李伯謙
영어음역 Yi Baekgyeom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264년연표보기
몰년 1321년연표보기
본관 청주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평장사(平章事) 이공승(李公升)의 4대 후손이다. 아들은 이자심(李資深)이다.

[활동사항]

충렬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남경 사록(南京司錄)에 임명되었다가 여러 관직을 거쳐 우정언(右正言), 지내지(知內旨)를 역임하였다. 외직(外職)인 공주부사(公州副使)에 부임하여서는 농사와 양잠을 장려하여 백성들의 살림을 풍요롭게 하였으며, 다시 우사간(右司諫)에 임명되었다. 충선왕 초에는 사헌집의(司憲執義)를 거쳐 우대언(右代言), 지선부사(知選部事), 예문관사백(藝文館司伯)으로 승진되었으며, 밀직부사(密直副使), 선부전서(選部典書)를 역임하였다.

또한 제주목사(濟州牧使), 해주목사(海州牧使), 남경의 유수 등으로도 부임하였는데, 부임지마다 선정을 베풀어 그 치적이 높았다. 1318년(충숙왕 5) 제주(濟州)에서 김성(金成) 등이 악당들을 규합하여 반역을 일으켰을 때 국가에서 이를 토벌하려 하였으나, 적임자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난민들이 말하기를 “만일 이백겸(李伯謙)송영(宋瑛)이 와서 우리를 다스린다면 우리가 어찌 배반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므로 이백겸송영을 보내 초무케 하였더니, 얼마 안 되어 반란이 평정되었다. 1321년에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이르러 나이 58세로 죽었다.

[의의와 평가]

이백겸은 외모가 출중하고 항상 몸가짐이 단정하였다. 여러 고을의 수령으로 임명되었으나, 항상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그들을 풍족케 하니, 백성들 또한 그를 아끼고 사랑하였다. 청백리이며, 뛰어난 민정관으로서 본받을 만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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