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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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고종 9)에 제작된 군현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 「고산현(高山縣)」 지도. 『1872년 군현지도』는 고종 9년(1872)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1872년 3월부터 6월까지 전국의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된 지도를 도(道) 별로 수합하였는데, 그 수는 모두 461점으로 경기도 40점, 충청도 52점, 전라도 8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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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고종 9)에 제작된 군현지도(郡縣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 「전주부(全州府)」 지도. 『1872년 군현지도』는 고종 9년(1872)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1872년 3월부터 6월까지 전국의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된 지도를 도(道) 별로 수합하였는데, 그 수는 모두 461점으로 경기도 40점, 충청도 52점,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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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Protestantism)는 가톨릭의 정책에 불복(protestantio)한 루터, 칼뱅, 쯔빙글리 등에 의해 진행된 종교 개혁 운동의 결과로 생긴 기독교 분파이다. 종교개혁은 1517년 독일 가톨릭 신부인 루터가 로마 교황을 겨냥하여 「95개 조항 반박문」을 발표함으로 태동하였는데, 로마가톨릭에 대한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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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작성된 오래된 문서. 역사학에서 다루는 고문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또는 사람과 기관[주로 중앙과 지방의 관아] 사이에서, 또는 기관과 기관 사이에서 주고받은 문서로, 양자 사이에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를 가리킨다. 시기적으로는 일본이 무력을 앞세워 조선을 강점하는 1910년 이전에 작성된 문서들이 고문서의 범주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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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있는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고산성당은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양야리 제외],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수만리 제외],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천호, 대치리 제외] 일원을 담당하는 로마가톨릭교회이다. 고산성당의 모태는 되재성당이다. 고산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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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 속하는 법정면. 고산면은 전라북도 완주군의 중앙에 위치한다. 동쪽은 완주군 동상면, 북부는 완주군 경천면, 완주군 화산면, 완주군·비봉면, 서편은 완주군 봉동읍, 남쪽은 완주군 용진읍, 완주군 소양면과 접한다. 고산면은 1,600년의 역사가 있어 고산학(高山學) 정립이 가능한 지역이다. ‘고산(高山)’은 고어로 ‘나라다라’이고, ‘나라’는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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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의 역사적 지리적 정보를 담고 있는 옛 지도 완주군의 고지도는 전주와 고산의 옛 지도들의 일부 내용과 중복되고 있으며, 『호남지도(湖南地圖)』, 『해동지도(海東地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동여도(東輿圖)』, 『청구도(靑邱圖)』, 『광여도(廣輿圖)』, 『1872년 군현지도(郡縣地圖)』, 『여지도(輿地圖)』,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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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이 포함되어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廣輿圖)』의 전주목(全州牧) 지도. 『광여도』는 19세기 전반에 제작된 회화식 전국 군현지도로 각 도별 지도 및 군현별 지도, 군사 요충지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광여도』「전주목」은 현재 전라북도 전주시와 완주군 삼례읍, 봉동읍, 용진읍, 소양면, 상관면, 구이면, 이서면과 익산시 오산면, 왕궁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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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수록되어 있는 고산현 지도. 『광여도(廣輿圖)』는 19세기 초에 제작된 회화식 전국 군현 지도로 각 도별 지도 및 군현별 지도, 군사 요충지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광여도(廣輿圖)』「고산현(高山縣)」은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의 고산면, 동상면, 비봉면, 운주면, 화산면, 경천면을 나타낸 지도로 관청 건물과 읍면, 주요 산천과 관련 정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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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군에 설치되었던 교통 편의시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의 지명에서 삼례도찰방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삼례읍, 삼례리, 찰방다리와 그 옆에 위치한 여수코빼기[본래 지명은 재실뜸인데, 한자명으로 고칠 때 태평리가 됨] 등이 그것이다. 조선시대 삼례역이 있었던 오백조면(五百條面)이 몇 차례의 개편을 거쳐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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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지편찬위원회에서 번역한 책. 2015년에 간행된 『국역 고산지』는 1964년 회상사에서 간행된 『고산지』 상·하권 2책을 번역한 것으로, 조선시대 옛 고산현 지역, 즉 고산면, 화산면, 운주면, 동상면, 경천면, 비봉면 등 6개 지역에 대한 풍속 지리지이다. 상권은 조선시대 읍지의 편제를 그대로 차용해 1964년 전후의 옛 고산현 지역에 대한 실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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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의병. 김덕명(金德明)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완주군 고산현 출신이다. 김덕명은 용력(勇力)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전주로 들어오기 위해 진안을 거쳐 전주로 들어오는 길에 웅치(熊峙)에서 패배하고, 다시 진안에서 금산으로 철수했다가 전주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전라도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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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지역에서 부르는 말잇기 노래. 「나무가세」는 「말잇기노래」 또는 「말꼬리잇기노래」라고 한다. 유희요 가운데 말장난, 말놀이 과정에서 언어 자체가 놀이의 대상이기 때문에 언어유희요라고 부른다. 특히 아동의 경우에는 이러한 말놀이 노래를 통해서 말 배우기를 학습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언어유희요는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의 하위유형으로 분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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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전승되는 남도잡가. 남도잡가란 조선 후기의 광대나 사당패 등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해 전라도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창출된 민요를 지칭한다. 대개는 판소리를 부르는 전문 소리꾼이 병행해서 잡가를 부른다. 고종 때 전라남도 옥과(玉果)[현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에서 풍류하던 율객(律客) 신방초(申芳草)가 나와서 「화초사거리」를 만들어 부른 것이 잡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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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일대에서 여럿이 논을 맬 때 부르던 노동요. 전라북도 완주 지역의 논매는 소리로는 「방개소리」, 「사허소리」, 「우야소리」가 조사·보고되었다. 김익두와 유화수가 1982년 3월 16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무지마을에서 유유동[남, 66세], 이천희[남. 65세], 이충원[남. 74세] 외 여러 명으로부터 「방게소리」와 「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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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의 농촌 공간 재생 사업의 꽃, 삼례 비비정마을과 삼례 문화예술촌.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과 삼례문화예술촌 삼삼예예미미는 농촌 공간 재생 사업의 성공 사례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의 양곡창고들은 2013년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580호]으로 등록되었으며 2016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역 문화브랜드 대상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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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대원사 명부전에 있는 목조지장보살상과 그 권속 일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중턱에 있는 대원사는 1606년(선조 39) 진묵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한다. 대원사 명부전 안에는 수미단 위에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고, 좌·우측 벽을 따라 각각 다석대왕과 파관, 사자, 귀왕, 인왕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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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이 포함된 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고산현 및 전주부를 비롯한 전라도 지도. 『동국여지도』는 조선 후기 문인 화가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서화첩인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海南尹氏家傳古畵帖一括)’에 포함되어 있는 조선전도이다. 윤두서는 1712년 해남으로 거처를 옮겨 1715년에 사망하였으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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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펼쳐진 동학농민운동. 조선 후기 정치기강의 문란과 삼정의 폐단으로 인한 농민의 피폐한 삶과 농민 봉기,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등장에 따른 위기의식의 고조, 동학의 창도와 전파 등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따라서 동학농민운동은 위정자와 수령의 부정부패와 수탈과 착취에 맞선 사회개혁, 서양 세력의 경제적·문화적 침투와 조선 침략을 노골화한 일본에 맞선 반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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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에 있는 성당터. 되재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에서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완공된 성당[1895]이며, 한강 이남에서는 처음 세워진 성당으로 최초의 한옥 성당이다. 되재성당은 대한제국기에 신학문을 교육하는 학교와 측량강습소를 설립해 근대적 실업교육을 실시했다. 되재성당은 한국전쟁 때 건물은 전소되었으나 새로 건축해서 공소 건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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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에서 김덕령에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김덕령[1567~1596]은 광주광역시 출신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왜적에 항거했던 인물로 체구가 작지만 날래고 민첩하며 신용(神勇)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덕령이 무고로 인해 감옥에서 죽자 김덕령에 대한 민중들의 안타까움이 더해져 김덕령의 용력에 대한 전설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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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지역에서 모심을 때 부르는 논농사 민요. 호남 지역의 논농사 민요 전승 양상을 보면 「모심는소리」보다 「논매는 소리」가 압도적이다. 김매기는 한여름 땡볕에서 서너 번에 걸쳐 수행하기 때문에 기간이 길고 힘든 노동과정이다. 그러나 김매기는 일정이나 동원인력 등을 미리 계획하고 대처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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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 분포하는 주변의 평지에 비해 높이 솟은 지형. 조선시대 신경준(申景濬)이 편찬한 『산경표(山經表)』에 따라 완주군의 산을 분류할 수 있다. 완주 지역으로는 크게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금남정맥(錦南正脈), 호남정맥(湖南正脈)의 세 개 산줄기가 지나고 있다. 완주군이 다른 지역과 맞닿는 경계 중 동쪽의 진안군 경계와 남쪽의 임실군 경계가 거의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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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에 전하는 전라감사였던 이서구가 여성의 개가를 금지시키게 된 이야기. 「살인사건 밝혀낸 이서구」는 황인덕이 2001년 8월 7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구암마을의 오용근[남, 71세]으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103~105쪽에 「살인사건 밝혀낸 이서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전라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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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에서 벌어진 동학농민운동. 삼례[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는 조선시대 전라도와 중앙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여행객들을 위한 시설이 갖추어진 역참이 있었던 곳이었다. 이러한 점이 참작되어 1892년 전라도 일대 동학교도들이 모여 교조의 신원과 동학의 공인, 동학교도에 대한 침탈과 수탈을 금지시켜 줄 것을 전라감사에게 요청하는 집회가 개최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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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마천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려. 유양원(柳良源)[1857~?]의 본관은 문화, 자는 경화이다. 친부는 유석조, 양부는 유석언이다. 어머니는 남평문씨[1806~1886]이다. 유양원은 1857년(철종 8) 5월 10일에 태어났다. 유양원의 부모님이 뜻하지 않은 병으로 자리에 눕자 몸에 좋은 약과 귀하다고 하면 산신령님께 빌며 산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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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 속하는 법정읍. 삼례읍은 10개의 법정리와 64개의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삼례읍은 조선시대에 삼례도찰방역이 있었으므로 삼례역 또는 삼례라 했다. 1914년 삼례역의 이름을 따서 삼례면이라 했고, 1956년 삼례읍으로 승격되었다. 삼례읍은 『1872년 지방지도』에서 ‘삼례역(參禮驛)’이라는 지명을 찾을 수 있다. 삼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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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에 설치되었던 숙식 제공 편의 시설. 전통시대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적인 시설이었다. 교통 편의의 제공 외에도 빈민을 구제하고 백성을 진휼하는 기능도 있었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시대 승려나 불교신도들이 요로(要路)에서 가난한 여행자와 병든 사람들에게 숙식과 약품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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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효자이며 한학자. 소성술(蘇星述)[1804~1879]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군삼(君三), 호는 창유재(昌裕齋)이다. 소세량(蘇世良)의 11대손으로 아들은 소휘식(蘇輝植)이며, 손자는 소학규(蘇學奎)이다. 학자이며 효자로 알려져 있다. 소성술은 어려서부터 효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완주군 용진면을 비롯한 전라도 유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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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 오백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일괄. 완주 송광사 대웅전 뒤편에 있는 정면 측면 3칸 팔작지붕 전각인 오백나한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한 삼존상 3구, 16나한상, 제석상 1구, 인왕상 2구, 사자상 2구와 500구의 나한상이 있다. 특히 오백나한상은 1656년(효종 7)에 조성되었으나, 현재 봉안된 것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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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공산품의 교환을 목적으로 개설된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전통시장. 오늘은 장날이다! 새벽을 여는 장닭의 홰치는 소리를 들으며 아부지와 엄니는 5일장을 가시기 위해 부산 나게 움직이셨다, 엄니는 새벽밥을 지어 자식들을 먹이고 아부지는 장에서 팔 농산물을 광에서 꺼내셨다. 말린 고추, 참깨, 밤 등을 포대에 넣어 지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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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에서 전승되는 시집살이 서사민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신전마을 주민 진선순[여, 62세]이 부른 「시집살이노래」는 1991년 1월 18일 채록되어 1995년 발간된 문화방송의 『한국민요대전』-전라북도민요해설집[CD와 해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진선순의 친정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으로, 가창자는 「시집살이노래」를 자신의 친정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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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완주 지역의 음식은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성에 맞는 기본적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마다 음식의 종류나 명칭이 다양하고, 조리법도 다르지만, 완주 지역에서는 나름의 일상 음식, 세시 음식, 의례 음식, 향토 음식이 지역에 맞게 발달하였다. 완주 지역을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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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에 설치되었던 숙식 제공 편의 시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210개 원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전라도는 245개가 있었다. 전라북도 완주군에는 전주부를 중심으로 동쪽 30리[12㎞]에 위치한 신원(新院), 남쪽 40리[16㎞]에 위치한 상관원(上館院), 북쪽 30리에 위치한 허고원(虛高院), 북쪽 35리[14㎞]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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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7월 9일경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소양평[안덕원]에서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안덕원(安德院)은 전라북도 전주시 산정동에 있던 원(院)의 하나이다. 동시에 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을 지칭하기도 한다. 안덕원마을은 진안 방면에서 완주군 소양면을 지나 전주로 들어오는 초입에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산정동과 금상동 지역에 해당된다. 안덕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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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설치되었던 교통편의시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앵곡역은 고려시대에 ‘장곡역’으로도 불렸으며, 전통시대 전라도의 주요 교통로로 기능하다가 1896년에 폐지되었다. 앵곡역이 기록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사』 권94 「지채문 열전」, 4권 「세가」로, “삼례역(參禮驛)에 이르자 박섬(朴暹)이 아뢰기를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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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 출신의 문신. 양곡(梁穀)[1585~1618]의 자는 종학(種學),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아버지는 1597년(선조 30) 문과 급제자로서 정랑(正郞)을 지낸 양몽열(梁夢說), 할아버지는 양국량(梁國樑), 증조할아버지는 양세준(梁世準), 장인는 황진(黃津)이다. 양곡은 1585년(선조 18)에 전주에서 태어났으며, 30세 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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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편찬자 미상의 3책으로 구성된 『여지도(輿地圖)』에 있는 전라도 고산현(高山縣) 지도. 『여지도』는 보물 제1592호이며 3책으로 구성된 지도책이다. 1책에는 서구식 세계지도인 천하도지도(天下都地圖), 조선전도인 아국총도(我國摠圖), 청나라의 수도인 북경 지도인 북경도성삼가유시오단팔묘전도(北京都城三街六市五壇八廟全圖), 중국 지도, 의주-북경 사이의 사신로(使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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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북도 완주군의 역사. 전라북도 완주군은 전라북도의 북부 중앙에 위치해서 동으로는 전라북도 진안군(鎭安郡)과 충청남도 금산군(錦山郡), 남으로는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서로는 전라북도 익산시(益山市)와 전라북도 김제시(金堤市), 그리고 북으로는 충청남도 논산시(論山市)와 경계가 서로 잇닿아 있다. 또 안으로는 전라북도 전주시(全州市)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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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일대 교통로에 설치된 교통·통신·숙박시설. 전통시대 역(驛)은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중추적인 교통·통신시설이었다. 역제의 기원은 신라 소지왕 대에 설치한 우역(郵驛)의 설치에서 시작한다. 삼국시대 중앙집권국가를 구축하는 중에 지방통치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도로가 발달하였다. 또한 지역 간 물자와 문화의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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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출신의 관인. 오경린(吳景麟)[1846~1915]의 자는 응서(應瑞), 호는 운치(雲痴), 본관은 낙안(樂安)이다. 아버지는 오도상(吳道常), 아들은 오영익(吳寧翼)이다. 오경린은 1846년(헌종 12)에 태어났으며, 37세 때인 1882년(고종 19) 임오 증광시(壬午增廣試)의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다. 오경린의 아버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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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 설치되었던 교통편의시설. 옥포역(玉庖驛)은 『고려사』 권82, 「병지 참역」에서 “전공주도(全公州道)는 21역을 관장한다. 삼례(參禮)[全州], 앵곡(鶯谷)[伊城], 옥포(玉庖)[雲梯]…… 정민(貞民)[懷德]이다”라는 내용이 기록상에서 처음 등장한다. 『세종실록』, 『세조실록』에서는 교통로 개편에 따라 관할역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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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소작농이 지주에게 소작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벌인 농민운동. 전라북도 완주군에는 만경강의 여러 지류가 흘러서 일찍부터 수리 혜택을 누리면서 농업이 발달했으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한국인 지주의 농장이 집중되어 있었다. 지주들은 소득을 높이기 위해 소작료율을 점차 높이고 소작인을 자주 교체했기 때문에 소작인들은 삶을 이어갈 수 없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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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에 위치한 정수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삼존불.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머리 부분이 큼직하고 하체가 넓고 정삼각형에 가까워 상체가 비교적 큼에도 안정적 비례를 보여준다. 다만 다른 무염파 불상과 비교하면 무릎 폭이 좁은 편이다. 머리에는 유계 표현이 거의 없고, 나발이 촘촘하여 반달형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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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 송전리 들판에서 발생한 만세시위운동.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파급되었다. 전라북도 지방은 1919년 3월 5일 군산의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도내 각지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1919년 3월 13일에는 전주에서 대규모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17일에 전라도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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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 왜구가 쳐들어와 약탈한 사건.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인 해적을 말한다. 물론 삼국시대에도 우리나라에 일본인 해적이 침입한 적은 있지만 침입 규모나 피해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왜구하면 고려 후기에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인 해적집단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기록상 왜구가 고려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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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제리는 본래 운제현이 있던 곳에서 유래한다. 운제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경천저수지로 수몰되어 들어가고 지금은 법정리명만 남았다. 운제마을이 운제현의 치소였다. 운제리는 본래 운제현이 있었던 곳인데 1392년에 고산현에 편입되어 운제골이 되고, 1895년 (고종 32)에 운서하면에 편입되어 운제리라 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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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7월 8일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일대에서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웅치는 전라북도 진안과 전라북도 전주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웅치는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에서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여러 개 노선이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했을 때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두목마을에서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덕봉마을로 넘어가는 덕봉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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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위봉사 보광명전에 봉안된 석가삼존불. 완주군의 위봉사 보광명전에 봉안된 석가삼존불이다. 결가부좌하고 항마촉지인을 맺은 석가모니불을 보존으로, 좌협시는 오른손으로 정병을 들고 있는 입상의 문수보살상이, 그 반대편에는 보현보살상이 있다. 특이하게도 본존은 목조이고 좌우협시는 흙으로 만들어져 있다. 위봉사 보광명전 석가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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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출신의 종교인. 유중철(柳重哲)[1779~1801]은 아버지 유항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평생을 동정으로 마칠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 같은 뜻을 가진 이순이 루갈다와 동정 부부로 평생을 함께할 것을 맹세하고 혼인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 유항검을 비롯하여 동정부부 이순이 그리고 일가족 4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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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치복(柳致福)[1866~1910]은 1907년 한 마을 사람 11명과 같이 항일구국투쟁을 맹서하고 삼남의진 의병대장 유지명 의진에 들어갔다. 유지명 의진에서 동지 3명과 함께 10월 10일 우북면 장암 이화순의 집에서 군자금 30원을 조달했다. 이어서 송태식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미력면 도내리의 최순표의 집에서 군자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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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겸 관료. 이계맹(李繼孟)[1458~1523]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희순(希醇), 호는 묵곡(墨谷) 또는 묵암(墨巖)이다. 태사(太師) 이도(李棹)의 후손이다. 부여감무(扶餘監務) 이의(李宜)의 증손자이며, 현감(縣監)을 지낸 이대정(李大種)의 손자요, 이영(李潁)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생원(生員) 채소명(蔡紹明)의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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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출신의 유학자 겸 항일 지사. 이병은(李炳殷)[1877~1960]은 완주 출신의 학자이자 항일지사였다. 현재 전주에서는 이병은을 송기면[1882~1956], 최병심[1874~1957]과 함께 ‘전주의 3재(齋)’라고 일컬으며 칭송하고 있다. 이병은의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자는 자승(子乘), 호는 고재(顧齋)이다. 고조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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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애국지사. 이보한(李普漢)[1872~1931]은 개신교에 입교한 후 평생을 전교 활동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했다. 특히 전주시와 완주군 일대 거지들과 함께했으며, 3.1운동에 참여했던 애국지사이다. 이보한은 애국지사, 기독교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명(異名)은 이성한(李聖漢), 별명은 ‘거두리 참봉’이다. 출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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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 앵곡마을에서 이서구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이서구(李書九)[1754~1825]는 조선 후기 뛰어난 실학자로, 홍대용과 박지원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이덕무·유득공·박제가 등의 실학파 문인들과 사귀었다. 이서구가 전라감사로 부임해 오면서 생겨난 다양한 설화들이 전주시 및 전라도 여러 지역에서 구비전승되고 있다. 전라북도 완주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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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주(李柱)[1562~1594]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거느리고 평양성전투에 참여하였고, 진도(珍島)에서 이충범(李忠範)과 서몽린(徐夢獜) 등의 모반을 진압하였다. 이주의 본관은 전주(全州), 출생지는 전주, 자는 방언(邦彦), 호는 한촌(寒村)이다. 세조의 셋째 아들 덕원군(德原君) 이서(李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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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7월 10일 이후부터 1592년 9월 17일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일대에서 왜군과 싸워 이긴 전투. 이치는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진산면은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진산현이었다. 진산에서 이치를 통과해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운주면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충청남도 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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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전라북도 완주군의 역사와 문화. 일제는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말살정책과 식민지 수탈정책을 융합한 악랄한 식민정책을 추진했다.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는 일제의 가혹한 통치와 수탈에 대한 저항으로써 학생운동, 농민운동이 전개되었다. 완주군은 1896년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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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왜군의 침략으로 발생한 사건. 1592년(선조 25) 4월 13일에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하면서 임진왜란은 시작되었다. 1592년 5월 3일에 한양이 함락당하고, 1592년 6월 14일에 평양이 함락되었다.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은 전쟁이 장기화되는 조짐을 보이자 임진강에서 작전회의를 갖고 조선을 분할통치하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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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의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를 지켜낸 웅치와 이치 전투. 임진왜란은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전란이었으며, 민족사적 위기였다. 그러나 조선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기는 하였지만, 왜군을 물리치고 국가를 지키고 왕조를 유지하며 민족사의 연속성을 확보하였다.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지만, 전라도가 보여준 역할은 대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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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전라도 천주교 발원지 중 하나인 초남이와, 전국 최초의 한옥 성당인 되재성당. 초남이에서 천주교를 전파한 유항검의 행적을 살펴봄으로써 초남이가 성지가 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전국 최초로 한옥 성당이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 이 지역이 갖는 교회사적, 또는 종교 지리적 의미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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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을 경유하는 익산역에서 여수엑스포역까지 연결하는 철도 노선. 전라선은 철도 노선이 전라도에 위치해 ‘전라선’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전라선은 익산역에서 시작해 삼례역, 전주역, 순천역을 지나 여수엑스포역에 이르는 호남 내륙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노선이다. 전라선의 총 길이는 185.7㎞이다. 일제강점기 통감부의 12개년 계획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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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를 본관으로 하고 전라북도 완주군에 거주하는 세거 성씨. 전주최씨(全州崔氏)는 전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를 달리하는 4계파가 있다.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와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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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전라북도 완주군의 역사와 문화. 전라북도 완주군은 조선시대 전주부[전라북도 전주시]의 외곽 지역과 고산현이 합쳐진 것으로 1935년에 전주군에서 분리되었다. 전라도로 들어오는 관문 삼례역이 위치했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전라도로 들어오는 길목을 막아 호남을 보존했던 웅치전투와 이치전투의 현장이다.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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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송광사의 위상과 가치. [송광사의 내력] 전라북도 완주군의 송광사는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5년(583) 터를 잡고, 경문왕 7년(867) 가지산문(迦智山門)의 3대 조사인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636년 세워진 송광사 개창비에는 그 내용은 보이지 않고,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폐허가 된 이 송광사 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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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의 조선시대 역로와 삼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에 위치하였던 삼례역은 고려 전기로부터 조선 말기까지 운영되었던 역참이었다. 삼례는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북쪽으로 30리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전라도에서 지리적으로 교통의 요지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전라도의 수부인 전부의 북쪽 관문의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삼례역은 중앙과 전라도를 연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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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무신. 조여충(趙汝忠)[?~1593]의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고산현[현 완주군 고산면] 출신이다. 삼중대광(三重大匡)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이며, 병사(兵使) 조을정(趙乙鼎)의 현손이다. 조여충은 평소 말과 활을 익혀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主簿)[종6품]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초기에 일본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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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는 초월적 신이나 절대자를 숭배하고 신앙하여 인간 생활의 고통과 불안, 삶과 죽음의 문제 등을 해결하며 행복을 얻고자 하는 정신문화의 소산이다. 우리나라에도 초기국가시대에는 주술적 무교(巫敎)가 있었고 고대와 중세시대에는 불교와 유교가 전통사회를 이끌었다. 그리고 근·현대에 들어서는 천주교와 개신교인 기독교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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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서 마을 단위로 정월 대보름 전후에 볏짚으로 줄을 꼬아서 남녀 위주로 겨루는 민속놀이. 줄다리기는 한반도의 서남부, 즉 전라도 지역에서 왕성하게 행해지는 민속놀이이다. 호남 지역의 줄다리기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당산제라는 의례와 관련해 시행함으로써 ‘제의와 놀이’라는 이원구조를 충실히 따르는 특징이 있다.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줄다리기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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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의 로마 교황을 교회의 대표자로 인정하는 종교. 천주교는 공식 명칭으로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 또는 로마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서학(西學)·서교(西敎)·천주학(天主學)·천주공교(天主公敎) 등으로 불리다가 천주교로 정착되었다. 현재의 고산본당이 설립된 것은 1958년이지만, 그 기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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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는 천주교 성지. 초남이성지는 전라도 지역에 천주교 신앙을 전파했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생가터이다. 전라도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는 유항검이다. 유항검은 초남[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유항검은 세례를 받고 고향에 와서 가족들과 노비들, 집안에 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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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명나라 출신 무장. 추수경(秋水鏡)[1530~1600]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총병아장(摠兵亞將)으로 1592년(선조 25) 12월에 조선에 파견되어 1593년 평양성전투를 비롯해 주요 전장터에서 활약했다. 1597년 남원성전투에 참여하였고, 전주를 사수하다가 중상을 입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조선에 남아 전주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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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설치되었던 교통편의시설. 『고려사』 병지 「참역」에 “산남도(山南道)는 28역(驛)을 관장한다. 반석(盤石)[전주(全州)], 축산(築山)[고산(高山)]……달계(獺溪)[청거(淸巨)]이다”라는 기록이 유일하다. 축산역(築山驛)은 고려시대 22개 역로 가운데 산남도(山南道)에 속한 역이다. 산남도는 전주의 반석역(盤石驛)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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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에서 이성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바위 이야기. 이성계 인물 설화는 전승되는 계층과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른 층위로 전개된다. 이성계의 신성성이나 용맹, 왕이 될 수밖에 없는 당위성 등을 보여주거나 이성계의 신성성이나 용맹을 빌려 지역의 신성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설화들이 많다. 한편, 신하로서 고려의 임금을 배반한 인물로 그려져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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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 전해지는 풍년의 기쁨을 노래한 민요. 전라북도 완주군의 「풍년가」는 구성과 노랫말이 경기도 통속민요 「풍년가」와 유사해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나, 악곡 상으로는 서로 다른 노래로 보인다. 경기민요 「풍년가」의 후렴은 “지화자 좋다 얼씨구나 좋구 좋다”로 시작해서 명년 어느 절기에 그 절기의 놀이를 하자는 내용인데, 전라북도 완주군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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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의 한지 생산 역사와 유적. 전라북도 완주군은 조선시대 최고의 한지로 평가받던 전주 한지의 주 생산지이다. 전라북도 완주군은 전라북도 전주시의 외곽지역으로 1935년에 전주군에서 분리되었다. 완주 한지의 중심지는 소양면과 상관면이라고 할 수 있고, 구이면에서도 많은 한지를 떴으며, 이외에 동상면과 화산면 등에서도 한지를 많이 떴다. 1944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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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 설치되었던 숙식을 제공하던 편의 시설. 전통시대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적인 시설이었다. 교통 편의의 제공 외에도 빈민을 구제하고 백성을 진휼하는 기능도 있었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시대 승려나 불교신도들이 요로(要路)에서 가난한 여행자와 병든 사람들에게 숙식과 약품을 제공하면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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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과 1895년에 편찬된 『호남읍지』에 수록된 고산현[완주군 고산면] 읍지. 『호남읍지』는 1871년 제1차 총11책[규장각본, 한국교회사연구소본], 1895년 제2차 총18책[규장각본] 등 2차례에 걸쳐서 편찬되었다. 『호남읍지』는 19세기 고종 초기의 정국 운영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자료이다. 고종 연간에는 탕평군주(蕩平君主)를 모범으로 삼아서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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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과 충청남도 논산시에 천여 개의 바위봉우리로 걸쳐 있는 878m의 산. 대둔산(大芚山)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충청남도 금산군에 걸쳐 있다. 대둔산은 경위도상으로 북위 36° 07′ 12″ 동경 127° 19′ 24″에 위치하며, 완주군의 동북쪽에 위치한다. 1977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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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호남지도(湖南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고산현(高山縣) 지도 『호남지도』는 전라도 군현을 그린 채색 필사본 지도집으로 보물 제1588호이다. 일명 비변사인방안(備邊司印方眼)지도라고 한다. 제1~6첩에는 전라도 53개 고을의 지도[제주, 대정, 정의 제외]가, 제7첩에는 전라도전도와 전라좌도지도, 전라우도지도 등 3매가 수록되어 있다. 제1~6첩의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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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서 이규홍 의병대가 일본군과 벌인 전투. 이규홍 의병대는 1907년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는데, 이 전투를 화산면전투라고 한다. 이규홍은 의병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당하면서 전국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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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평리는 고지들, 고성리 또는 화평이라 해서 전라도 8평(坪)의 하나로 유명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중심 마을의 이름을 따서 ‘화평리’라 명명했다. 화평리는 본래 고산군 운서하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성남리, 후고리, 상고리, 중고리, 수락리를 병합하고 ‘화평리’라 해서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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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문신. 황거중(黃居中)은 고려 말 이성계를 도와 황산대첩에서 활약하였으며, 조선 개국을 도와 원종공신이 되었다. 황거중의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경덕(敬德), 호는 사가(四佳), 고려 중윤(中尹) 황민보(黃旻甫)의 10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석(黃碩), 할아버지는 황공로(黃公老)이다. 아버지는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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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서 전승되는 남도잡가류 민요. 「흥타령」은 남도잡가의 하나인데, 남도잡가는 연곡 형식의 레퍼토리가 구성되어 있다. 「흥타령」은 「보렴」, 「화초사거리」를 비롯해 「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흥타령」, 「개구리타령」, 「새타령」, 「성주풀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단에는 진양조장단, 중모리장단, 중중모리장단이 많다. 잡가란 조선...